성범죄

요즘들어 엄청난 양의 성범죄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보도되는 내용이 이정도 양과 질이라면, 보도되지도 않고 묻히는 사건들의 양은 엄청날 것이다. 실제 사건의 수는 변하지 않았는데 기사만 늘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어떻든간에 최근 성범죄 관련 기사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내 경우에도 친구가 이성 친구들이 많다보니 들려오는 내용도 많다. 친구의 친구 등으로 한다리 건너서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아는 그 친구가 바로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다수 있다. 이건 뭐... 직장내 성희롱,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행, 길에서 당한 성추행 등등. (뉴스에서 본 얘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들은 친구의 얘기다. 그닥 자세한 얘기를 여기서 꺼내고 싶진 않다.)

그런데 많은 피해자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적당히 넘어간다. 가장 큰 이유는 성범죄의 피해자가 오히려 범죄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매도된다는 점이다. 가령, 여자가 어떻게 처신했길래 남자가 덮치겠느냐든가,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니까 남자들이 꼬인다던가, 넌 당해도 싸다던가. 그런데, 나도 여자를 참 좋아하는 남자지만, 여자가 어떤 행동을 하고 다녔는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성범죄가 일어난 시점에서 가해자의 도덕성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나는 여자들이 조신하게 다니고, 옷을 수수하게 입고 다닌다면 성범죄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반대할 의도는 없다. 그런데 심각하게 짧은 치마와 가슴이 훤히 보이는 상의가 남자를 자극했기 때문에 원인 제공자는 여자이며 그들은 "피해자"임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거나 줄어든다거나 하는, 그런 방향의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남자들이 사회적 기준에서 정의된 적절한 도덕적 선을 넘는 것이, 어떤 의상을 입은 경우에는 넘어도 된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 주장대로라면, 논리적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모든 여자를 전혀 성욕이 일어나지 않을 만한 얼굴로 성형수술을 시켜버리면 어떠한 성범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건 그렇게 해도 성범죄는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그 피해자가 특정한 의상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그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해자가 비난을 면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성범죄는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일어난다. 즉, 이것은 오해다. 평소에 아무리 조신하게 하고 다닌다 하더라도, 일단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그 사람은 평소에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한 것으로 낙인이 찍혀 버린다. 이것은 성범죄 자체보다 더 큰 문제일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들은 사례의 피해자들은, 성범죄 그 자체보다도 평소에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그 남자가 덮쳤겠느냐는 소리를 듣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실제로는 지극히 조신하며, 성적으로도 흠잡을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신고하여 가해자를 정식으로 처벌받도록 하는 행위는 피해자에게는 오히려 자살행위가 된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기분을 느끼며 엄청난 자괴감을 느낀다. 그리고 거의 완전한 자기비하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그런데 이것도 결국은 사회가 만들어 낸 낙인의 효과이다. 나쁜짓을 당했다 하더라도, 목욕하고 잘 씻으면 깨끗해 진다. 중요한건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고, 그게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아무도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이 드러날 경우 발생하는 2차적인 사회적 문제들이 문제의 원흉인 가해자를 붙잡아서 처벌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단계에 문제가 있는데, 피해자가 신고했을 때 사생활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찰도 문제고, 그런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 비난하고 낙인을 찍는 사람과 사회도 문제이다. 실제로 비난하지 않고 낙인을 찍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나라 사회에서 조성된 사회적 분위기는 낙인을 찍는 분위기이고, 피해자들은 어쨌든간에 가해자보다 그 낙인을 더 두려워 하고 있다. 더불어, 가해자에 대한 느슨한 처벌과 계도 실패가 보복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오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해결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고 있고 누구나 다 아는 뻔한 것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방법들이 구체화되고, 현실이 되어서 성범죄 관련 기사들이 줄어들고 내 친구들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덧붙이자면, 요즘 공직자들의 성범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아저씨들 사모님들이 그 소식을 알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_-;
by snowall 2010. 7. 27. 0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