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인 1984를 읽다보면, 몇가지 단어를 치환하는 것만으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그려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해킹, 크래킹, IP추적, 통신검열, 인터넷 실명제, CCTV, 위치추적 기술...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내놓을 수 있는 곳은 없을까? 블로그? 공개다. 싸이월드? 해킹됐다더라.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혼자 알고 있다가 미쳐 죽기 전에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 얘기하고 쓰러진 이발사, 그가 믿었던 대나무 숲이 임금님에게 말해줄 줄이야.

인터넷은 현대의 대나무 숲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한번 소문이 나면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겉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게 되어 있다. 게다가 그것이 좋건 나쁘건 일단 한번 걸리면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결정되어버린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빅 브라더는 누가 될까? 모든 것을 검색해주는 구글? 인터넷 실명제로 모든 사람을 확인하려는 네이버?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어보면, 빅브라더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세상을 통치하는 간부들도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잘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고 믿는거다. 중요한건 그가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알고 있다는 공포를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모든 것을 다 보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존재할리가 없다. 하지만 그 공포에서 벗어나는 순간, 주인공처럼, 벗어난 사람은 세뇌되어 버리고 자신이 믿는 현실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혼란 속으로 빠져버리게 된다.
요즘의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 물어보면 모든 정보가 모두 나온다.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딴건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에 물어보면 "뭔가" 답이 나온다는 것이고, 그 답은 진실인 것으로 간주된다.
빅브라더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그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모든 통신수단을 감청한다는 비밀기관 에셜론(Echelon)을 운영한다는 소문도, 그게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정부는 전 세계의 통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거짓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거짓과 진실은 서로 뒤섞여 있고, 특히 현대처럼 초대량의 정보가 미친듯이 쏟아져 나오는 사회에서, 완전히 뒤엉켜 있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X-Files의 결론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하면, 진실은 없다. 단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울고있는 피해자가 현실에 하나, 둘 존재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내가 접속한 인터넷 저편 어딘가에는, 현실에서 인터넷으로 접속한 또다른 사람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의 누군가를 말했지만, 인터넷의 누군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로 상처받는건 그 인터넷의 누군가를 만들어내는 실제 인간인 것이다.

댓글, 악플, 선플, 인터넷 실명제, 검열, 불법복사, 뭐 이런 것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최근에 대두되는 문제들이다. 이것들이 가져오는 악영향을 막아내기 위해서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미래에는 모두가 인터넷의 인격과 실제 세상의 인격을 분리해서 어떤 악플도 인터넷의 인격에만 영향이 가고 실제 인격에는 영향이 없는, 이중인격 상태로서 무덤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빅브라더는 더욱 막강한 권력을 갖고 세상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by snowall 2007. 5. 26.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