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는 유행을 전혀 따라가지 않는다.
자전거.
8만원짜리 MTB사서 도심을 질주하던 아이는 커서 배나온 아저씨가 되었다. (나)
근데 요새는 자전거 하나 탈까 하면 월급의 절반을 쏟아부어서 일단 시작하고, 매달 뭘 또 사고 달고 닦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출퇴근을 자전거 타고 다니면 살도 빠지고, 교통비도 아끼고 좋다. 내가 자전거를 탄다면 여전히 MTB 한대 사서 도심을 질주할 것 같다. 자전거로 도심을 달리면, 빨리 달릴수록 더 많은 매연을 먹게 되는데 가벼운 자전거는 무슨 소용인가. 비싼 자전거는 어디 그냥 묶어두지도 못하고 사무실로 갖고 올라가야 한다.
사진기.
그냥 똑딱이 카메라나 130만화소짜리 핸드폰 카메라로 적당히 찍으며 놀던 시절은 어디 가고 50만원짜리 DLSR이나 미러리스 사진기 몸통에 200만원짜리 렌즈를 달아서 찰칵 거리는 취미를 가져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10년간 수천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중 대부분은 잘 보관되어 있지만, 단 한번도 다시 열어본 적이 없다. 나는 과거를 되돌아 보며 "그때 그랬지" 하며 추억에 잠기는 일이 없다. 좋았던 과거를 되돌아 보면 아픈 현실이 나를 찌르고, 아픈 과거를 다시 되새기면 현실이 되어 아플 뿐이다.
베스트셀러
소위 베스트 셀러라는 책들을 그렇게 막 찾아 읽지 않는다. 남들이 다 보는 무한도전을 단 한번도 본방을 본 적이 없다. 남들이 다 사는 갤럭시S를 사지 않는다. 아이폰도 싫어한다. 남들 다 다니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심지어 남들 다 가는 군대도 안갔다.
커피
사무실에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있다. 사용법은 매우 간단한데, 물로 한번 세척하고 커피를 볶아서 믹서기에 갈은 후, 커피 머신에 커피 가루를 탈탈 털어넣은 후 물을 부어주고나서 버튼을 한번 누르면 아주 향기롭고 맛있는 에스프레소가 한잔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한번도 마셔 본 적은 없다. 귀찮으니까.
차
올해, SUV차량을 새로 샀다. 사람들이 물어본다. 가죽시트야? 몰라요. 파노라마 썬루프는? 없어요. 옵션은? 글쎄요. 차값은? 몰라요. 네비는? 없어요. 시트가 가죽이건 천이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썬루프는 필요 없는 기능이다. 나도 돈이 있으니까 샀겠지. 차값은 검색하면 다 나온다. 네비는 필요 없어서 안 샀다. 내 차 타보는 사람들은 다 한번씩 물어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들일까?
전공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물리학이 뭔지는 아시나요?
그럼 이렇게 물어보더라. "취직 잘 되냐?" 저의 학과 동기들 중에 70%가 대기업 들어갔고, 취직 안된 동기가 없는데 말입니다...
시계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명품 시계 브랜드가 있다. 내 노트북 가격의 시계, 내 차 가격의 시계, 우리 집 가격의 시계, 그리고 그보다 비싼 시계. 아주 정확한 전자시계보다, 매일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수동식 시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취향이니까 뭐 나랑은 상관 없다. 문제는, 나랑 상관 없는데 나한테 시계 안 차고 다니냐고 물어보는 부분이다. 사방에 고개를 돌리면 어딜 봐도 시계가 있는데 왜 시계가 필요한 것인가. 그럼 그게 예쁜가? 내 생각에는, "안 예뻐요"
피부관리
요새는 남자도 관리를 받아야 한다며 좋은 화장품도 소개시켜 주고, 좋은 피부관리점도 알려주려고 하고, 올바른 세안법도 막 가르쳐 주려고 한다. 난 물론 안쓰고, 안가고, 대충 한다. 내가 내 피부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데 뭐하러 하나.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아니지. 그건 아니지. 너가 너의 피부에 의미를 두고 관리하는 것을 말리지 않겠지만, 내가 나의 피부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을 말리지도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따로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질 만능주의 세상에서, 파편화되어가는 인간관계와 반복되고 기계화되는 생활에 지쳐, 옛 것을 찾고, 아날로그를 지향하며, 뭔가 아련한 것을 그리워 하는 세상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작위적이다.
어떤 자동차 광고에서, 지금까지는 사람이 차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차가 사람을 사랑할 때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다. 사람은 차를 사랑해서도 안되고 사랑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정상이다.
자동차 껍데기에 흠집 생기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비싼 자전거를 훔쳐가면 가슴이 아프다. 그럼, 자전거를 그렇게 애지중지해야 하는 걸까?
세상을 둘러보면, 좋은 자전거 하나쯤 타 줘야 하고, 알 굵고 바늘 세개 달린 시계 팔목에 걸어줘야 하고, 이정도쯤은 다 해줘야 여유롭고 즐기는 삶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일에 치어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고, 자기도 로또 당첨되면 그렇게 여유롭게 살아야지 하며 생각한다. 그러나 당첨되지도 않을 뿐더러 당첨 되어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당첨금을 어떻게 해야 더 불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날려먹게 마련이다. 어차피 당첨금 없어도 잘 살던 삶이었다. 그런 당첨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어느정도의 여윳돈이 있으니 필요할 때 적당히 쓰면 된다. 그러다 다 떨어지면 하던 일 하면서 사는 거고.
예전에 알던 친구가 화장실에 가면서 나에게 명품 가방을 잠시 맡기고 다녀왔었다. 그때, 생가죽이니까 물에 젖지 않도록 잘 보호해 달라고 하길래 그러마고 조심해 주었다. 그날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과연 명품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의 몇십년간 그 제품만 만든 장인이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해도, 물방울 튀는 것이 두려워 벌벌 떨어야 한다면 그것은 싸구려다. 그건 판매 가격에 상관 없이 싸구려다. 비싼 돈 주고 산 가방이니 상하면 자기 마음도 상하고, 나 역시 그런 가방을 쓰고 있다면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 명품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마음가짐이라면 그 명품을 쓰면 안된다. 그냥 갖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가격의 가방을 사서 쓰는 것이 정상이다.
화를 내는 여러가지 경우 중에서 가장 멍청한 대사는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앙?" 그래서 그게 얼마짜린데 그러나. 그런 대사는 꼭 있는 놈들이 더 하더라. 내가 그렇게 화내면 또 나를 무시하며 "그깟거 물어주면 될거 아냐?"
정말 제대로 돈을 쓴다면, 이것이 천원짜리간 100만원짜리이건 10억원짜리이건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별로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어쩌다가 천원짜리 가방이 10억원짜리 유명 브랜드 명품 가방보다 편하고 튼튼하고 더 예쁘다면, 천원짜리를 사서 잘 쓰면 된다. 그게 진짜 명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의 소비 행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다. 이 경우에 남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사람은 생각하고 움직이고 감정이 있어서, 자신의 여러가지 말과 행동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바꾼다. 사람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물건은 물건으로서 존재할 뿐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는 사람이다. 그 물건의 소유자가 그 물건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소유자가 아니라 노예일 뿐이다. 물건은 수동적인 존재인데, 수동적인 존재의 노예가 되었으니 그 노예인 인간도 수동적이 된다. 원래는 "난 대단한 사람이니까 이 물건을 갖고 있어"라는 자존감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 물건을 갖고 있으니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오류를 범한다. 알다시피 두 문장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행복과 불행도, 천국과 지옥도, 행운과 불운도,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이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하나에 뒤집을 수 있는 손바닥 위에 놓여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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