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썼었던 과학의 날 글쓰기.


1.

과학은 못하는 것이 없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편리하게 해 주었다. 심지어는, 전혀 손댈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이는 인간에 마음에 관하여서도 과학은 그 손을 대고 있다. 우울증 치료제와 같은 정신에 작용하는 약이 등장하였으니 머지않아 인간의 감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약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기분이 좋아지는 약은 '마약'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볼 때 과학은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으며 인간을 최상의 존재로 끌어올리는데 큰 몫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이 기술로 변하고 다시 이 기술이 공공복리가 아닌 사리(私利)를 추구하는데 악용된다면 과학은 인간을 "인간이 최상의 존재로서 최상의 존재인 인간을 해치는" 최악의 존재로 끌어내리게 된다. '과학'은 인격이 없기 때문에 오직 과학이라는 것만을 두고 본다면 책임을 따질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을 개발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쁘게도 될 수 있고 좋게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과학의 힘은 계속해서 강력해질 것이다. 이제까지 계속 그렇게 되어 왔고, 과학이 오히려 퇴보한 일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에 앞으로도 과학이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발전해 나가는 과학 만큼 인간의 도덕수준이 발전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원자폭탄 때의 수십만명의 수준이 아닌 인류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 대해서 좋은 예가 하나 있다. '라엘리안'이라는 일종의 종교인데, 인류 외계인 창조설을 주장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현재의 인류보다 25천년이나 앞선 외계 문명이 인류를 창조하고, 이제 다시 인류에게 돌아와 그들의 앞선 문명을 전수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인간들이 아직 '우매하여'서 그들의 진보된 과학을 받아들일 경우 그것을 이용하여 발전을 계속해 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 다투다가 공멸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아직 전수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유를 빌리자면 이것은 어린아이에게 핵폭탄 발사 스위치를 넘겨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 곧, 도덕이 완전히 바로잡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과학이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과학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에 걸맞는 도덕수준이 발달하지 못하고 과학을 개발, 이용하는 자들이 공익을 위해 과학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인류의 평화를 위해 차라리 과학발전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발전시켜온 과학이 오히려 인간을 멸망케 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2.

생명공학의 발전에 의해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이제 개발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인간을 복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세포 몇 개만 제공하면 나와 똑같이 생긴 인간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모두 똑같은 유전형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복제들 사이에서는 장기이식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복제라는 기술은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더욱 잘 치료할 수 있다는 의료적인 면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생명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우선, 가장 큰 문제이면서 사람들이 곧잘 오해하는 개념이 있다. , 복제를 하면 세포를 제공한 것도 이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복제들도 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복제된 인간은 절대로 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복제된 인간들을 나라고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손끝에서 발 끝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신경이 퍼져 있으며 이 신경에 의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며 신체 부위에 있는 그 감각들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복제에서는 그런 것을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나의 복제라고는 하지만, 내가 그 복제들을 나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신경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것은 결코 로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 나는 의 생각을 알 수 있지만 복제의 생각은 절대로 알 수 없다. , 아무리 유전자적으로 똑같은 형질을 갖고 겉모습도 완벽하게 똑같다 하더라도 복제된 것은 나의 모습일 뿐 나의 영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복제인간을 만들기까지의 과정 또한 문제가 있다. 체세포에서 핵을 꺼내서 수정란에 이식하는 과정은 말로 쓰자면 매우 간단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은 매우 불안정한 작업이다. 그래서 동물의 경우는 한 마리의 정상적인 복제가 태어나기 위해서 그 전에 무수히 많은 기형이 일어났다. 만일, 이대로 인간을 복제하려 한다면 한 명의 정상적인 복제인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형인간들이 필연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의 생명의 근원인 유전자를 복제해서 만든 개체이므로 그 복제인간들 역시 하나하나가 생명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인간이다! 중간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기형인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아무리 기형이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그들을 죽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살인이다.

아무튼, 이 외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을텐데,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인간복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 내는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똑같은 인간을 찍어낸다 하더라도 그 머릿속에 들어가게 되는 생각들은 모두 다른 것들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모두 제각각의 인간들이 되는 것이다.

인간복제는 이렇듯 윤리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다만, 미래에는 이러한 기술들을 더욱 발전시켜서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by snowall 2012. 12. 31. 1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