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는 참 세상을 쉽게 산다.
대학원
다니면서 참 많이 깨지고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어찌나 힘든지, 졸업하고서
물리 그만두고 다른거 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정말 많이 했다) 다른거
하더라도 못할 이유는 없어보이고,
도전해본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마당에 후회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물리학이라는 것이 이제 더이상 포기가 안된다.
지금, 겨우 석사
졸업 논문을 쓰는데, 옆방
선배는 이틀 밤새서 만든 졸업논문을 나는 한달째
붙잡고 있다. 뭐,
그런데 품질은 옆방 선배가 이틀만에 만든 논문이랑
그다지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지,
왜 밤새고 있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나 자신이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을 뿐이다.
내게는 열정이 있다.
나로하여금 겨우 석사 논문 쓰는데도 몇달 동안
밤새워서 만들게 하는 열정이 있다.
그런데 이 열정은 차갑게 식은 열정이다.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열정이 없는 것은 식은 열정과는 또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나의 열정은
차갑게 식어서 물리학을 포기하도록 만들 것 같다.
유학간
선배들이 열심히 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부러운 일이면서 동시에 나도
그만큼은 할 수 있다는 기대 또는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유학을 갔다가 결국 포기하고 중간에
되돌아 오는 사람들을 보면,
나 역시 유학을 가서 좌절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는
우울함에 빠지게 된다.
유학을 가지 말고,
우리나라에서 취직해서 적당히 돈 벌면서 살면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경지에
도달할 자신은 있다. 물리학
분야에서는 그만큼 성공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이 없어진 나의 태도가,
분명히 지금 다니는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다지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분명 이렇게 우울하지 않았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가?
그때의 열정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당연히 아직 내 안에 있을 것이다.
다만 대학원을 다니면서 저절로
숨어버렸을 뿐이다.
분명히 학부때까지는 상당히 우수한
학생이었고, 지금도
그때의 실력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공부를 안해서 많이 잊어버리긴
했어도 다시 공부하고 책 읽으면 복구할 수 있는
실력이다.
대학원 다니면서
노력을 안했다. 사실
많이 놀았다. 물리
공부보다는 다른 걸 더 많이 한 것 같다.
연구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참 많이 놀았던 것 같다.
놀았다는 사실에 대해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놀았기 때문에 남들이 석사때 쌓을 수 있는 실력보다
덜 쌓은 것은 사실이다.
유학가서 어차피 처음부터 새로
배울 거라는 점을 핑계삼아 공부를 덜 했다.
연습문제도 덜 풀어보고,
책도 대충 읽었다.
공부에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놀기는
많이 놀았다.
그래서
나의 열정은 현재 식은 열정이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때, 나는 유명한 물리학자가 되어 여기저기서 강연도 하고, 수십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하고, 뭔가 사색에 잠겨서 우주의 구조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되지 않는 나의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때, 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 갑자기 우울해진다. 물리학을 연구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참 신기하다. 물리학을 잘 할 거라는 자신감은 점점 없어지지만, 물리학을 더 많이 공부해 보고 싶다는 욕구만은 참 많이 생긴다. 어딘가의 노래 가사에 있듯, “헛된 꿈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조금씩 물리에 미쳐간다. 물리에 중독은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나의 계획은 10년을
걸고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계획이다.
이제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다. 8년간
더 정진해보고, 물리가
안되면 그때가서 생각해 보자.
계속 해야 할지, 그만
둘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아마 평생 물리만 공부하면서 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사는 걱정을 하기에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 물리학이라는 것이 그냥 공부할 때는 재미있지만, 이것을 “직업”으로 삼아서 자신의 생계를 꾸려 나가려고 하면 갑자기 가슴이 탁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런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를 자만심에 아주 가까운 과도하게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버티는 중이다.
논문을 쓰다가 우울하여 잡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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