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건 내 성격과 맞물려 있는 다음의 문제이다.
여러 사람들이 내놓은 인생 공략집들을 살펴보면 맨날 블루 오션이니 성공을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느니 도전해야 한다느니 등등의 말들을 하고 있다. 뭐 그렇다 치자.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는가? 누가 보장해줄까? 신이? 기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한대?
사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직업과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그 위치에서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성공하는 사람이 될지 역시 알 수 없다. 이건 복권 사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 사실 똑같다. 복권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어떤 사람은 돼지꿈 꾸고 당첨됐다더라"일 뿐, "내가 돼지꿈을 꾸었으니 당첨될 것이 확실하다"는 아니다. 똑같이 노력하면, 어떤 사람은 성공한다. 누군가가 성공한다는 건 확실하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이게 사회 전체에서 보면 누군가 성공했으니까 그 사회가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해피엔딩이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누구는 성공했지만 누구는 실패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나는 실패해버린 것이다. 어째서? 성공한 저놈이랑 똑같이 노력한것 같은데 난 왜 실패했지?
성공했을 때의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보다 실패했을 때의 좌절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크다. 따라서 남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고도 실패한 길은 나 역시 걷고 싶지 않다. 남들이 실패한 길을 걷다가 나도 실패한다면, 내 인생 누가 책임져 주나? 결국 나만 바보병신 되는 거잖아. 실패하고싶지 않다는 불안감은 결국 사람들에게 도전하는 마음을 빼앗아 간다. 인류의 발전은 항상 도전하는 사람들이 이끌어왔다.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이 수천, 수만번 실패하고나서 성공한 단 한사람, 또는 단 한번의 성공이 인류를 발전하게 만들었다. 자주 예로 드는 사람이 링컨이랑 에디슨이던가. 링컨은 평생 좌절이랑 실패만하다가 막판에 대통령 했고, 에디슨은 전구 만들려고 수천번 실패한다음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 이전에, 평생 좌절만 하다가 그냥 좌절하고 죽은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고 전구 만들려고 시도하다가 수백번정도 하고 때려친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 좌절은, 그 실패를 누가 가치있게 평가해줄것인가. 누구나 실패했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바로 그런 실패의 주인공이 되고싶지 않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실패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거다. 실패하다가 결국 성공해서 뭔가를 해 내고야 만다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수천번, 수만번, 아니 수억번의 실패라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성공할때까지 살기엔 너무 짧다. 실패만 하다 가기엔 너무 짧다. 차라리 내가 하고싶은, 정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 따위는 그저 깊이 묻어두고 남들이 다들 쉽게 성공하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고, 작은 실패정도 하고 큰 실패는 안하면서 그럭저럭 남들만큼 성공하면서 살고 싶은게 당연하다.
최근의 세태가 그렇다. 공무원시험 경쟁률 900:1. 초등교사 정원 축소에 반발. 미발추 문제. 대기업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먹고살기 힘들어요.
공무원이 좋다. 40살만 되더라도 윗선에서 폐기처리하려고 눈을 부라리는 세상. 그때 회사에서 나오면 딱히 할일도 없다. 자영업이라고 쉬운건 아니다. 당연히 정년 보장되고 임금 지불이 확실한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 들어가는게 좋지. 그래서 20대 청춘을 다바쳐서 시험공부를 하고, 그 바늘구멍을 뚫고서 공무원이 된다. 하지만 떨어진 사람들은 뭘까? 공부 안했을까? 공부 안했으면 떨어지는게 당연하다 쳐도, 합격한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이나 다들 열심히 공부했는데 누군 붙고 누군 떨어지는 걸까. 이건 실패 아닐까? 여기서, 이러한 실패는 다른 방면에서 실패하는 것 보다 훨씬 약발이 덜하다. 공무원시험은 내년에 또 보면 된다. 수능? 내년에 또 보자. 임용고시? 내년에 또 봐도 된다. 벤처기업? 요즘은 성공하기도 힘들고 실패하면 백수에 빚만 남는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수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기본에 충실했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성실했으며, 포기하지 않았고, 그 외에 성공할만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실패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요소들을 갖추지 않은게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에 세상은 잔인하다.
회사에 들어가서 하는 일 중에 대부분은 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필요 없는 단순업무라고 한다. 따라서 대졸자를 뽑는 것과 고졸자를 뽑는 것은, 특수한 업무가 아닌 한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세상은 대졸자를 원한다. 왜냐하면 더 많이 배웠을테니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나? 근데, 점수가 똑같을 때, 차라리 제비뽑기로 당락이 결정되면 덜 좌절할지도 모른다. 이건 나랑 쟤랑 똑같이 했는데 쟤는 붙고 난 떨어지고 왜그런지는 모르겠고, 심지어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더 열심히 한것 같은데 난 떨어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현대와 같이 아주 작은 차이로 인생이 통째로 결정나고, 그 결과 성공한 사람은 뜨고 실패한 사람이 아작나는 세상에서, 실패하는걸 두려워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실패를 겁낼수밖에 없다. 실패가 그냥 실패로 끝나는게 아니라 완전히 짓밟혀 버리니까. 재기 불능으로 박살이 나 버리니까 더더욱 실패할 수 없다. 따라서 안정된 길을 선택해야한다.
이런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얘기는 실패한 사람들의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실패한 사람들은 다 떨어질만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떨어졌고,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할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성공했겠지. 그래도, 한번 실패했다고 죽여버리는건 너무하잖아? 우리가 약육강식의 야생동물도 아니고, 사람이잖아.
극심한 경쟁을 줄이려면 성공하는 방식을 다양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기준도 바꿔야 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만족하는 성공을 찾아내야 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성공인 걸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의 돈을 가지면 성공인걸까, 어느 회사 고위급 임원이 되면 성공인걸까.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무진장 겁난다. 미래를 맞이하는건 시시각각으로 공포 그 자체다. 세상은 미친듯이 변화하고 시계는 어지럽도록 돌아가는데 내가 발전하는 속도는 느려터졌다고 생각된다. 루이스 캐롤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보면 붉은 여왕이 이런 말을 한다.
이에 대해, 루이스 캐롤의 멋진 답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 앨리스가 체셔 고양이를 만나서 하는 대화가 있다.
* 앨리스의 이야기에 관한 모든 대화는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한국에서는 북폴리오에서 나오고 최인자가 번역한 "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인용하였다.
과연 나는 마침내 성공할 것인가?여기서 말하는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다고 가정하겠다. 그렇다면 그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 사람들이 내놓은 인생 공략집들을 살펴보면 맨날 블루 오션이니 성공을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느니 도전해야 한다느니 등등의 말들을 하고 있다. 뭐 그렇다 치자.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는가? 누가 보장해줄까? 신이? 기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한대?
사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직업과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그 위치에서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성공하는 사람이 될지 역시 알 수 없다. 이건 복권 사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 사실 똑같다. 복권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어떤 사람은 돼지꿈 꾸고 당첨됐다더라"일 뿐, "내가 돼지꿈을 꾸었으니 당첨될 것이 확실하다"는 아니다. 똑같이 노력하면, 어떤 사람은 성공한다. 누군가가 성공한다는 건 확실하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이게 사회 전체에서 보면 누군가 성공했으니까 그 사회가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해피엔딩이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누구는 성공했지만 누구는 실패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나는 실패해버린 것이다. 어째서? 성공한 저놈이랑 똑같이 노력한것 같은데 난 왜 실패했지?
성공했을 때의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보다 실패했을 때의 좌절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크다. 따라서 남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고도 실패한 길은 나 역시 걷고 싶지 않다. 남들이 실패한 길을 걷다가 나도 실패한다면, 내 인생 누가 책임져 주나? 결국 나만 바보병신 되는 거잖아. 실패하고싶지 않다는 불안감은 결국 사람들에게 도전하는 마음을 빼앗아 간다. 인류의 발전은 항상 도전하는 사람들이 이끌어왔다.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이 수천, 수만번 실패하고나서 성공한 단 한사람, 또는 단 한번의 성공이 인류를 발전하게 만들었다. 자주 예로 드는 사람이 링컨이랑 에디슨이던가. 링컨은 평생 좌절이랑 실패만하다가 막판에 대통령 했고, 에디슨은 전구 만들려고 수천번 실패한다음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 이전에, 평생 좌절만 하다가 그냥 좌절하고 죽은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고 전구 만들려고 시도하다가 수백번정도 하고 때려친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 좌절은, 그 실패를 누가 가치있게 평가해줄것인가. 누구나 실패했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바로 그런 실패의 주인공이 되고싶지 않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실패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거다. 실패하다가 결국 성공해서 뭔가를 해 내고야 만다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수천번, 수만번, 아니 수억번의 실패라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성공할때까지 살기엔 너무 짧다. 실패만 하다 가기엔 너무 짧다. 차라리 내가 하고싶은, 정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 따위는 그저 깊이 묻어두고 남들이 다들 쉽게 성공하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고, 작은 실패정도 하고 큰 실패는 안하면서 그럭저럭 남들만큼 성공하면서 살고 싶은게 당연하다.
최근의 세태가 그렇다. 공무원시험 경쟁률 900:1. 초등교사 정원 축소에 반발. 미발추 문제. 대기업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먹고살기 힘들어요.
공무원이 좋다. 40살만 되더라도 윗선에서 폐기처리하려고 눈을 부라리는 세상. 그때 회사에서 나오면 딱히 할일도 없다. 자영업이라고 쉬운건 아니다. 당연히 정년 보장되고 임금 지불이 확실한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 들어가는게 좋지. 그래서 20대 청춘을 다바쳐서 시험공부를 하고, 그 바늘구멍을 뚫고서 공무원이 된다. 하지만 떨어진 사람들은 뭘까? 공부 안했을까? 공부 안했으면 떨어지는게 당연하다 쳐도, 합격한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이나 다들 열심히 공부했는데 누군 붙고 누군 떨어지는 걸까. 이건 실패 아닐까? 여기서, 이러한 실패는 다른 방면에서 실패하는 것 보다 훨씬 약발이 덜하다. 공무원시험은 내년에 또 보면 된다. 수능? 내년에 또 보자. 임용고시? 내년에 또 봐도 된다. 벤처기업? 요즘은 성공하기도 힘들고 실패하면 백수에 빚만 남는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수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기본에 충실했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성실했으며, 포기하지 않았고, 그 외에 성공할만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실패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요소들을 갖추지 않은게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에 세상은 잔인하다.
회사에 들어가서 하는 일 중에 대부분은 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필요 없는 단순업무라고 한다. 따라서 대졸자를 뽑는 것과 고졸자를 뽑는 것은, 특수한 업무가 아닌 한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세상은 대졸자를 원한다. 왜냐하면 더 많이 배웠을테니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나? 근데, 점수가 똑같을 때, 차라리 제비뽑기로 당락이 결정되면 덜 좌절할지도 모른다. 이건 나랑 쟤랑 똑같이 했는데 쟤는 붙고 난 떨어지고 왜그런지는 모르겠고, 심지어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더 열심히 한것 같은데 난 떨어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현대와 같이 아주 작은 차이로 인생이 통째로 결정나고, 그 결과 성공한 사람은 뜨고 실패한 사람이 아작나는 세상에서, 실패하는걸 두려워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실패를 겁낼수밖에 없다. 실패가 그냥 실패로 끝나는게 아니라 완전히 짓밟혀 버리니까. 재기 불능으로 박살이 나 버리니까 더더욱 실패할 수 없다. 따라서 안정된 길을 선택해야한다.
이런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얘기는 실패한 사람들의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실패한 사람들은 다 떨어질만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떨어졌고,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할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성공했겠지. 그래도, 한번 실패했다고 죽여버리는건 너무하잖아? 우리가 약육강식의 야생동물도 아니고, 사람이잖아.
극심한 경쟁을 줄이려면 성공하는 방식을 다양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기준도 바꿔야 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만족하는 성공을 찾아내야 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성공인 걸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의 돈을 가지면 성공인걸까, 어느 회사 고위급 임원이 되면 성공인걸까.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무진장 겁난다. 미래를 맞이하는건 시시각각으로 공포 그 자체다. 세상은 미친듯이 변화하고 시계는 어지럽도록 돌아가는데 내가 발전하는 속도는 느려터졌다고 생각된다. 루이스 캐롤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보면 붉은 여왕이 이런 말을 한다.
앨리스 : 글쎄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한참동안 빨리 달리면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거든요.
붉은 여왕 : 느림보 나라 같으니! 자, 여기에서는 보다시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단다.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배는 더 빨리 뛰어야만 해!
이에 대해, 루이스 캐롤의 멋진 답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 앨리스가 체셔 고양이를 만나서 하는 대화가 있다.
앨리스 : 부탁인데, 말좀 해줄래요,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할까요?아무것도 보장되지 않고,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미래지만, 가고싶은 길을 걷는다면 어딘가에 도착할 것이다. 심지어 그 끝이 실패라고 해도, 그 길은 내가 가고 싶은 길이었을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이 글을 남긴다.
고양이 : 그거야 네가 가고 싶은 곳에 달렸지.
앨리스 : 난 어디든 별로 상관 없어요...
고양이 :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괜찮아.
앨리스 : 어디든 도착만 한다면요...
고양이 : 오, 그렇게 되고말고. 꾸준히 걷는다면 말이야.
* 앨리스의 이야기에 관한 모든 대화는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한국에서는 북폴리오에서 나오고 최인자가 번역한 "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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