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자물리학을 전공하였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레이저-플라즈마 실험실에서 일한다. 레이저도 있고 플라즈마도 있다. 그 레이저는,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강력한 것이고, 세계적으로는 현재까지는 세번째로 강한 레이저다. 물론 맞는다고 죽지는 않지만, 옷에 구멍 정도는 날 수 있다. 물론 눈에 맞으면 망막이 타버려서 그대로 실명해 버리므로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레이저는 800nm의 파장을 가지는 적외선 레이저와 532nm의 파장을 가지는 Nd:Yag 레이저가 있다. 적외선 레이저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조심할 수도 없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빛에 대해서 조금 소개해볼까 한다. 오늘의 주제는 적외선도 아니고 가시광선도 아닌 자외선이다.

즉, 앞에 나온 얘기는 다 헛소리고...

여름에 작렬하는 태양을 보면 자외선이 눈으로 쏟아질 것이다. 너무 눈이 부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선글라스를 사용하여 눈을 보호한다. 선글라스는 어두운 색의 렌즈를 사용하여 빛의 밝기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글라스는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막지 못한다. 유리 재질이라면 자외선과 적외선을 흡수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플라스틱은 자외선을 투과시키므로 좋지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거운 유리로 된 선글라스를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빛의 밝기가 줄어들게 되면 우리 눈은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동공을 확장시킨다. 어두운 곳에서 잘 보기 위해서는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외선을 차단시키지 않는다면 확장된 동공으로 더 많은 자외선이 들어가게 되므로 눈에는 더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선글라스를 고를 때는 꼭 자외선 차단 코팅이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는, 선글라스의 재질이 자외선을 차단하는(흡수하는) 재질인지를 확인해 보자. (유리 말고 자외선을 차단하면서 가시광선에는 투명한 물질이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http://www.eye2000.net/glass.html
안경 렌즈의 종류는 여기에 잘 나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자외선을 차단하는 코팅의 원리를 알아보자. 본론이다.

빛이 어떤 물질을 만나면, 3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난다. 빛이 그 물질을 투과하거나, 흡수되거나, 반사된다. 빛의 밝기는 에너지와 관련이 있으므로, 투과된 빛의 에너지와 흡수된 빛의 에너지와 반사된 빛의 에너지를 모두 합치면 처음에 물질로 들어간 에너지의 크기가 된다. 이것을 에너지 보존법칙이라 부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투과된 빛의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므로, 흡수와 반사를 최대로 만들면 자연스럽게 투과는 줄어들게 된다. 수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흡수율 + 투과율 + 반사율 = 100%

흡수율은 물질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즉, 어두운 물질은 흡수가 많다는 뜻이다. 아무튼, 흡수율은 어쩔 수 없으니 놔두고 반사율을 높여보자. 여기에는 빛이 파동이라는 성질이 사용된다.

반사율이 높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들어간 빛 중에서, 반사된 빛의 밝기가 더 세다는 뜻이다. 밝기가 세다는 뜻은 진폭이 크다는 뜻이다. 빛의 밝기는 진폭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폭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파동의 어떤 현상을 이용하면 좋을까?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운 "파동의 간섭"을 이용하면 된다. 물론 내가 지금 이 글에 쓰고 있는 물리적인 원리 또한 이과생인 분은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시험 보고나서는 다 잊었겠지만...)

간섭 중에서, 진폭이 커지는 간섭은 "보강 간섭(Constructive Interference)"이라고 부른다. 물론 진폭이 작아지는 간섭은 "상쇄 간섭(Destructive Interference)"이라고 부른다. 그럼, 반사한 빛의 진폭이 커지게 하려면 반사한 빛이 보강간섭을 일으키도록 하면 된다. 잠깐. 근데 간섭이라는 것은 일단 두개의 빛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다른 하나는 어디에 있지? 이때 다른 하나의 빛은 렌즈의 저편에서 만들어진다. 렌즈를 벗어서 형광등 불빛에 비춰가며 이리저리 돌려보다 보면 렌즈에 반사된 형광등이 여러개가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곧 한쪽 면에서만 반사가 일어나지 않고 양쪽에서 모두 반사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빛이 렌즈에 들어갈 때 한번 반사되고, 나올 때 한번 반사되고, 나머지는 투과한다는 뜻이다. 물론, 한번 반사된 빛이 다시 반대쪽 면에서 또 반사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또다시 반사될 수도 있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반사율이 낮기도 하고, 한번 반사되는 것만 이해하면 나머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http://www.eyeng.com/news/?m=1&category=0402&mode=view&no=353
여길 보면, 렌즈의 굴절률은 1.5~1.7정도 된다고 한다. 다시말해서, 공기보다 굴절률이 높다는 뜻이다. 굴절률이 높다는 것은 빛의 속력이 느려진다는 뜻이다. 빛의 속력이 느려진다는 것은 빛이 진동하기 힘든 매질을 지나간다는 뜻이다. 파동이 전달되는 특성을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특징중의 하나가, 반사가 일어나는 면이 고정되어있느냐 아니면 자유롭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반사가 일어날 때의 위상(Phase)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잠깐. 위상? 그게 뭐지?!

위상이란, 일반적으로는 운동 상태와 위치를 한번에 말하는 것이다. 뭔가 좀 이상한 얘기 같은데, 가령 입자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싶다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3차원 벡터 1개와, 그 지점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3차원 벡터 1개가 필요하다. 즉, 6개의 수를 알고 있으면 입자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 이때 6개의 수가 만들어 내는 공간을 위상 공간(Phase space)이라고 부르고, 위상 공간에 있는 어떤 입자를 지칭하는 벡터를 그 입자의 위상이라고 부른다.
파동에서의 위상이란, 삼각함수로 나타냈을 때 삼각함수(sin 또는 cos) 안에 들어가 있는 항이 어떤 값을 가졌느냐를 위상으로 생각한다. 파동은 삼각함수 안에 있는 값만 알면 파동의 위치와 움직임을 한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으면, 파동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된다. 물 위에 물결이 일고 있을 때, 물결의 표면이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그리고 그 부분이 위로 움직이고 있는지 아래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게 되면 그걸 한번에 합쳐서 위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반사가 일어나는 면에 파동의 끝이 고정되었는지 자유로운지에 따라서 반사된 후에 위상이 바뀌게 된다. 만약 고정되어 있다면 파동의 위상은 정 반대로 바뀌어 버리고, 자유롭다면 위상은 변하지 않고 반사된다. 즉, 고정된 면으로 파동이 들어가면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빛이 위아래가 바뀌어 있다. 그런데 자유로운 면으로 들어가면 위아래가 바뀌지 않고 그냥 나온다. 물론 이것은 반사할 때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이며 굴절되거나 투과할 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고정단인 경우 위의 그림과 같이 위아래가 바뀌어서 반사된다.

자유단인 경우 위의 그림과 같이 위아래가 바뀌지 않고 반사된다.

워낙 중요한 개념이라 직접 그려보았다.

아무튼. 파동은 자기 자신과 겹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저렇게 반사되었을 경우라면, 자유단인 경우엔 보강간섭이 일어날 것이다. 아하. 그럼 반사를 보강간섭 시켜버리면 투과되는건 적어지겠네? 그러니까, 빛이 들어올 때 자유단이 되는 렌즈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빛이 들어올 때 자유단이 되려면, 렌즈의 굴절률이 공기의 굴절률보다 작아야 한다. 즉, 공기에서의 빛의 속력보다 렌즈 안에서의 빛의 속력이 더 빨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기는 기체고 렌즈는 고체다. 만약 고체 중에서 공기에 대해 빛의 굴절률이 더 낮은 물질을 찾을 수 있다면 왠지 대박이 날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그런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대책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한가지 방법은, 반사를 두번 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즉, 다음과 같은 구조를 생각한다.


입사하는 빛은 놔두고, 반사되는 빛만 두개를 그려보았다. 렌즈-코팅 경계면에서 반사된 빛과 코팅-공기 경계면에서 반사된 빛이 서로 보강간섭을 일으킨다면 어쩌면 투과되는 양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과연 코팅의 두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이다. 물론 코팅의 종류도 중요하다. 코팅을 무엇을 할 것인가는 굴절률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은 굴절률은 적당히 주어져 있다고 치고 두께부터 정해보자.

글이 너무 길어져서 나눈다. 쓰다가 지쳤다. http://snowall.tistory.com/1405


by snowall 2009. 7. 15.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