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상담한 학생에게 답변해준 내용. 상담 신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담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물론 상담 요청은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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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결론부터 요약해서 말하자면, 물리학과 가도 됩니다.

취업 생각해도 물리학과 가는것이 도움이 됩니다. '취직 잘되는 학과'에 가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어른들의 조언이 있을텐데, 물리학과 취직 잘 됩니다. 물리학과의 장점이 기계과나 전자과 같은 공대보다, 졸업하던 시점에 실력은 부족할 수 있어도 배우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기 때문에 취직 후에 금방 따라잡고 더 뛰어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건 회사 들어간 후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다 적용됩니다. 상품 개발, 설계, 컴퓨터 프로그램, 영업, 인사, 마케팅, 홍보, 분야를 막론하고 물리학 전공이라는 것은 장점이 돼요. 왜냐하면 물리학과에서 배우는 것은 복잡한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 시켜서 해결하고, 이 단순한 문제를 발전시켜서 복잡한 문제에 적용하는 기법을 배우거든요.

물론 다른 학과에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취직 측면에서 봤을 때. 그런데, 어차피 전공 못 살려서 취직할 거라면 어느 학과를 가든 상관 없을 거예요. 그런데 물리학과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거의 다 잘해요. 이건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앞에서 말한 대로 물리학 자체의 특징이랑, 두번째로는 물리학과 출신들은 세상에 물리학보다 어려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외에 나머지는 다 쉽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죠.

공대 가더라도 물리학은 기초적인거 다 배워야 해요. 그만큼 물리학이 기본이라는 거죠. 졸업할 때 쯤 돼서 대학원 갈 생각이 없어지더라도 취직에 치명적인 것은 아니고, 다른 전공자들과 비교해서 불이익 받을 점도 없으니까 물리학과 진학한다고 해서 취업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취업 얘기는 이쯤에서 끝내죠. 어차피 취직하려면 빨라도 5년 후에나 할 텐데, 지금 시점에서 취직 걱정하는건 너무 일러요. 그때 가서 어느 학과가, 어느 전공이, 어느 분야가 유망할 것인지 말하는 것은 위험해요. 물리학과는 매우 기초적인 분야라서 그때쯤에 어떤 분야가 유망하더라도 다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점만 기억해 두죠.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가 되는 그런거요.

그 다음, 물리학과에서 뭘 배우느냐는 건데요, 솔직히 쉽지는 않아요. 일단 뭐가 어려운지 얘기를 먼저 하고, 어떻게 공략하면 되는지 설명할게요.

대학교 1학년때의 일반물리는 물리2를 확장한 부분이라 물리에 관심이 있었다면 할만할 거예요. 실제로 어려워지는건 2학년때 전공 과목을 배우면서부터인데요, 본격적으로 어려워져요. 심지어, A+을 받아도 뭐가 뭔지 이해 못하고 졸업하는 사람도 있어요. 고전역학, 전자기학, 열/통계역학, 양자역학, 이렇게 네 과목을 4대역학이라고 해요. 상대성이론은 아쉽지만(?) 정식으로 과목이 개설되는 것은 대학원 때네요. 특수 상대성 이론은 고전역학의 끝, 전자기학의 끝에서 잠깐 배우는데 교수님에 따라 강의 안하고 건너 뛰는 분도 많아요. 일반 상대성이론은 대학원 수준이라 이거 배우려면 박사과정에 진학해야돼요.

왜 어려워지냐하면, 본격적으로 개념들이 추상화되기 시작하거든요. 고등물리2나 일반물리학 까지만 해도, 실제로 공을 던지거나, 회로의 저항을 본다거나, 압력과 온도를 잰다거나, 이렇게 실생활에 익숙한 개념들을 이용해서 문제를 내고 풀고 하잖아요. 전공 과목에서는 이런 개념들을 전부 다 추상화해요. 즉,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던 물리에서 상상조차 잘 안 되는 개념으로 발전한다는 거죠. 이 부분을 고등학교에서 생각하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건데요. 음, 뭐랄까, 쉽게 말해서, 요새 고등학교 교과서에 파인만 다이어그램이 나온다던데, 그 교과서에 실린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실제 우리가 아는 숫자로 계산하려면 A4용지로 수십장 정도의 적분 계산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그 적분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빼버리고 "파인만 다이어그램 덕분에 계산이 쉬워졌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당연히 대학에 가서 기대하던 것과 다르죠.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파인만이 노벨상을 받았겠어요? 심지어 슈윙거랑 도모나가는 그거 안쓰고 계산한 천재들인데요.

하지만 물리학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아요. 아무리 어려운 계산과 개념이 난무해서 멘탈을 난도질 해도,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숫자는 우리가 실험에서 측정할 수 있는 그 수치거든요. 가령 옴의 법칙이 대학에서는 벡터 미분 연산자 형식으로 얻어지는데, 이걸 이용하면 위치마다 다른 전류와 저항값을 구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때에는 덩어리의 저항을 얻었다면, 대학에서는 그 덩어리의 각 위치마다 저항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는 거죠. 최근에 LHC에서 얻은 힉스 입자의 발견도 마찬가지로, 앞에서 말한 수십 수백 페이지의 적분을 해서 얻은 결과를, 입자 검출기에서 나온 수치와 비교해서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이 맛에 물리를 하죠. 다른 학문이 따라 올 수 없는 그 맛. 화학이나 생물은 이론과 실험 중 실험이 훨씬 중요하고, 수학은 오직 이론만이 있잖아요? 물리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실험 결과는 그냥 레포트고, 실험 결과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은 쓰레기이기 때문에, 이론과 실험이 항상 같이 맞아 떨어져야 하고, 실험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 냈을 때, 또는 이론이 아직 설명하지 못한 결과를 얻어냈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비교할 수 없다고 봐요. (물리학과니까, 찬양좀 할게요. ㅎㅎ)

그럼, 대학에서는 도대체 뭘 배우는가? 그건 이 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nowall.tistory.com/9

그 다음...

사 이언스 캠프 같은데서 박사들이 강의한 내용을 주변 친구들이 다 이해한 것 같아 보였나요? 장담컨대, 그중 95%는 이해한 척 한 친구들이고, 나머지 5%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친구들일거예요.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똑같이 다른 애들은 다 이해했는데 나만 모르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겠죠.

집안 형편은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힘내라는 응원밖에는 해줄 수가 없네요. 다만, 잘 찾아보면 장학금 주는데도 많이 있고, 카이스트, 지스트, 유니스트 같은 곳의 대학원은 학비가 100% 무료에 용돈도 주기 때문에, 실력만 있다면 대학원 가는게 부담되지는 않아요. 언어에 소질이 있다고 했으니, 영어에 자신 있다면 유학을 노려봐도 되고요. 참고로 대학원 유학은 무조건 장학금 받고 가는 거예요. 합격한다면 그건 장학금 줄테니까 오라는 뜻. 이쪽 진학 상담은 4년쯤 뒤에 다시 해줘야겠네요 ㅎㅎ

물리학과에 진학한다고 치고, 물리학과에서 공부를 잘 하려면 고등학교때 기초를 잘 해두는게 중요한데요, 고3이니까 이제 어쩔 수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수학, 물리, 영어에 힘써야 해요.
특히, 수학에서는 미분적분 부분이랑 행렬과 벡터 부분이 매우 매우 매우 (x1000) 중요해요. 물리는 당연히 중요하고, 영어는 2학년때부터는 전공 교과서가 거의 다 영어책이므로 중요해져요.

저는 중앙대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하고, 카이스트 대학원으로 왔는데요.

처음에 물리학과 지원할 때는 밥 굶어도 하겠다고 해서 왔었어요. 와보니까 선배나 후배나 동기나 다들, 거의 대부분, 취직 하더군요. 심지어 성적이 그렇게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요. (물론 성적이 낮아도 된다는 건 아님.)

고 등학생들이,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하도 명문대 가라, 유망학과 가라, 말을 해서 걱정스러울텐데, 그렇게 잘 아시는 그분들은 그 학교 그 학과 가서 성공하시지 왜 그렇게 살고 계신가요. 미래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고, 어른들의 경험도 결국은 10년 이상 지난 해묵은 경험들이에요. 특히 유망 분야에 관한 경험은 더욱 그렇죠. 지금은 의사도 변호사도 월급쟁이에 영업 뛰는 세상이에요. 어느 분야를 가든, 뭘 하든, 거기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먹고 살 수는 있어요.

고급 외제차 몰고 다니고, 백화점에서 물건 살 때 가격 신경 안써도 되고, 회사 가면 다들 90도 인사하는거 부러우면 물리학과 오면 안되죠. 하지만 그냥 대충 먹고 살 정도로 벌면서, 연구하는거 좋아한다면, 물리학과에 오는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에요. 힘들지 않냐고요? 다른 직장, 어떤 직업도, 그만큼은 힘들어요. 세상에 돈 벌면서 안 힘든게 어딨나요? 있으면 좀 알려줘봐요. 내가 하게.

그리고 지금 잘하는 애들 부러워 하지 마세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요. 물론 노력형 천재는 못 이기지만, 그런 사람들하고는 친구 먹으면 되는 거고요.

" 내가 재능이 없는건 아닐까?" 이거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나이는 29살이에요. 그때까지 해도 안됐다면 바꿔야겠죠. 하지만 19살에 해야 하는 고민은 "내가 정말 하고싶은 것이 이것일까?"예요. 저는 석사 과정에서,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 수백번씩 그만둘까 말까 고민했어요. 스트레스성 편두통까지 찾아오고. 그래도 그만둬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해야겠다는 답을 하면서 버티고 여기까지 왔네요. 저는 이제 30살이기 때문에, 이제는 재능 없어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상황이라, 못 바꿔요 ㅎㅎ

이런 말이 있죠. 해도 병신, 안해도 병신이면, 해본 병신이 낫다고.

아무튼간에, 이건 물리학과에 진학해도 나쁠게 없다는 일방적인 이야기였으니까 다른 분들 조언과 상담도 모두 참고해서 결정하도록 해요.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아요. 부모님도 못 책임지고 선생님도 못 책임져요. 내가 잘못한게 없어도 책임져야 할 때도 있고, 억울해도 울 수도 없는 상황도 나타나요. 그러니까, 알아서 잘 결정하도록 하세요. 물리학과 갔다가 망해도, 저 역시 책임 못지니까요.

다음 글들이 참고해볼만 할 거예요.
http://snowall.tistory.com/3288
http://snowall.tistory.com/2735
http://snowall.tistory.com/376
http://snowall.tistory.com/1825
http://snowall.tistory.com/1826
http://snowall.tistory.com/2789

by snowall 2013. 3. 25. 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