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전자기학 이론은 맥스웰이 쿨롱, 암페어, 패러데이의 법칙을 모아서 만든 맥스웰 방정식으로 표현됩니다. 신기하게도, 맥스웰 방정식은 자석은 반드시 극이 2개가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죠. 1개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걸까요?

극이 한개뿐인 자석은 물리학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이고, 있을 법도 한데 발견이 안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맥스웰 방정식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모두 4개의 방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개는 "균질한 방정식"이고 나머지 2개는 "균질하지 않은 방정식"입니다. 균질하다는 것은, 가령 ax=0과 같이 x가 만족하는 방정식이 0이 되는 것이고, 균질하지 않다는 것은 ax=b와 같이 x가 만족하는 방정식이 0이 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균질하지 않은 방정식에 들어간 b와 같은 것이 우리가 말하는 "전기 전하"에 해당합니다.

만약, 균질한 방정식에 있는 0 대신에 다른 숫자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자리에 0이 아닌 다른 숫자가 온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전하"에 해당하고, 그 결과로서 반드시 "극이 1개뿐인 자석"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현재 우주에서는 극이 1개인 자석은 없거나, 혹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균질한 방정식 부분의 우변은 0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겠죠.

처음에, 극이 하나뿐인 자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과학자인 에렌하프트입니다. 그는 1945년에 피지컬 리뷰지에 자신의 실험에서 그것이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험은 설계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져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극이 하나뿐인 자석에 관한 이론을 가장 처음으로 완성한 사람은 유명한 물리학자 폴 디랙입니다. 1931년에 최초로 논문을 발표했고, 이후 1948년에 완성된 논문을 발표했죠. 이 논문에서 그는 만약 자기 전하가 존재한다면 그 크기는 전기 전하의 역수에 비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전기 전하는 대단히 작기 때문에 자기 전하는 반대로 대단히 커지게 되겠죠. 대략 10000배 정도 커지게 됩니다. 또한, 자기 전하가 우주에서 어떻게 움직여 나가게 되는지 이론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여러 실험들이 계속되었지만 그 결과는 극이 하나뿐인 자석의 존재를 부정하는 실험뿐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2002년에 이탈리아의 MACRO 입자 검출기에서 관측된 결과인데, 그 결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극이 하나뿐인 자석 입자가 우주에서 날아올 확률이 1년에 0.00000001개 정도, 즉 1억년~10억년 정도에 지구에 1개가 오는 정도의 결과라고 합니다. 또한, 빅뱅 이론과 인플레이션 이론으로부터 예측되는 밀도가 우주 전체에 1개 정도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못보고 지나갈 것 같군요.
by snowall 2006. 9. 30. 14:44
언제부터인지 아니면 옛날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블루 오션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블루 오션이란, 아직 포화가 되지 않은 시장을 뜻하는데 이미 다른 사업자들이 모두 장악해서 더이상 먹을 것이 없는 레드 오션과 대비된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나라고 해서 블루 오션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이나,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냥 몇자 주절대볼 것이 있어서 몇글자 적는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들어, 사람들이 컴퓨터가 없을 때는 그냥 살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최초에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그것을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팔기 시작했을 때, 애플은 이미 그들의 블루 오션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미 가득찬 시장을 탈출해서 아직 아무도 진출하지 않은 사업을 새로 시작해버린 것이다. 블루 오션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아무도 없으므로 나혼자의 독점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단점은 의외로 심각한데, 앞서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최초 시장 진입을 위한 모든 노력을 전부 나혼자 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디 참고할만한 것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으며 소비자의 요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대로 닫혀버리는 곳이 바로 블루 오션인 것이다. 더군다나 블루 오션에서 나혼자의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점점 커지면 다른 사업자들이 진입하기 위해서 도전한다. 만약 다른 사업자들이 나를 벤치마킹해서 나보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면, 이건 말 그대로 죽쒀서 개주는 형국이 될 것이다. 즉, 블루 오션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내가 그곳에 처음 도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할뿐더러 어떻게든 개척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놓고나서도 독점을 놓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블루 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초기 사업자가 되어서 새로이 개척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장을 급성장 시키면 안된다. 시장의 성장 속도가 맘대로 조절되는 건 아니지만, 시장이 급성장하면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초기에는 가격이 올라가서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겠지만, 그 결과로 충족되지 못한 수요에 순식간에 다른 후발 사업자들이 들어앉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의 성장속도를 잘 조절해서 내가 공급할 수 있는 속도만큼, 그리고 내가 공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속도만큼 시장을 성장 시켜야 한다. 마냥 시장만 크다고 블루 오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건 아니다. 수영을 예로 들면, 처음부터 수십미터를 잠수할 수는 없으며 처음에는 얕은 곳에서 물장구치는 것 부터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블루 오션을 찾아내는 것도 일이지만 그만큼 지켜내는 것은 훨씬 힘들다. 예를들어, 인터넷 전화라는 엄청나게 혁명적인 개념을 만들어서 수익을 창출해 냈던 다이얼패드도 지금은 망해서 사라져간 과거의 회사가 되었다.
만약 내가 블루오션에 진출하고 싶은데, 누군가 다른 사업자들이 그곳에서 이미 경쟁하고 있다면 그곳에 발을 들이지 마라. 그 경쟁자들을 전부 눌러버릴 자신감과 작전이 없다면 결고 그런 피터지는 블루오션에 진출해서는 안된다. 그곳은 그들이 흘린 피 때문에 곧 레드오션이 된다.
뭐, 다 좋다. 그럼 블루오션을 만드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나라고 딱히 뭘 아는 건 아니고, 더군다나 내 전공과는 아무 상관 없는 분야지만 그냥 몇자 헛소리를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미친짓이다.
2. 지도가 한장 필요하다. 시장에 있는 물건들의 지배구조 지도인데, 모든 것에 대한 지도까지는 필요 없을 것이다. 내가 개발할 분야에서, 현재 무엇이 잘 나가고 있고 무엇이 잘 나가지 않고 있는지 파악한다.
3. 잘 나가지 않는 것들을 개선해서 더 잘나가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보는것도 좋다.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 보다는 개선/개량이 더 쉬운 과제가 된다.
4. 아니면 창의력을 발휘하여 시장의 지배구조 지도에 없는 상품을 하나 만들어 낸다. 사실 이게 말로 쓰면 쉬운데 아주 그냥 미친듯이 고민해야 허접한 아이디어 하나 나오는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이 작업은 브레인 스토밍 정도로는 안되고 브레인 허리케인 급의 초거대 상상력 실험을 해야 한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마인드 맵 트리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말로 쓰니까 무진장 쉽다. 자, 다들 성공하기 바란다.
by snowall 2006. 9. 30. 03:11
*스포일러 있음

라스 만차스 통신 : ISBN = 89-952828-9-4

16회 일본 판타지 소설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설 "링"의 작가인 스즈키 코지가 "심사위원이 된 이후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라는 평을 했다는데, 나 역시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이다. 판타지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묻어나는 진짜 사람같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잔인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런 류의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전개되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기묘한 대립 구도에 구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기묘한 대립 구도는 소설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얽혀있다. 기묘하다는 이유는, 명백한 대립 관계이고 서로가 서로를 향한 투쟁의 감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대놓고 싸우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러한 분노를 마음속에 눌러담고 있던 주인공이 완벽하게 왜곡된 세상을 향해서 확 저질러 버린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어느쪽이 더 좋은 세상이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지금 있는 상황 자체가 싫었기에 분노를 폭발시킨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사회적 현실은 너무나 부조리한 일이 많이 있고, 말도 안되는 일이 진짜로 일어나고 있으며, 나쁜놈들이 득세하는 시대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훨씬, 명백하게, 객관적으로 옳고 착하며 바르고 권장할만한 길이 될 수 있다. 또한 지금의 현실을 다 바꾸고 혁명을 일으키는 일은 대단히 힘들고 폭력적이며 틀리고 나쁘며 아무도 권장하지 않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떤 현실이든간에, 바꿔야 할 부분이 있고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by snowall 2006. 9. 29. 10:28
죄수의 딜레마를 주제로 한 세번째 글이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수능 시험은 대단히 쉬운 시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매년 문제를 새로 만들어서 내고 있으며, 매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흔치 않은 유형의 시험이라고 본다. 어째서 매년 난이도 조절이 실패하는 걸까? 문제 내는 선생님들이 바보일까? "이정도는 풀겠지?"라고 생각한 문제가 너무 어려운 걸까? 짧게는 고3의 1년을, 길게는 초등학교 입학부터의 12년을 "명문 대학"이라고 하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만을 해 온 애들이 전부 바보인가? 아니면 명문대학은 그런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천재나 행운아들만이 가는 곳인가? 매년, 대학교 입시 요강이 발표되면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
어쩌라고...


문제의 난이도는 어떻게 하면 적절히 조절될까? 출제위원-수험생 한명 사이의 딜레마를 고려해 보자. 출제위원이 문제를 쉽게 내면 수험생의 점수는 높을 것이고 어렵게 내면 점수는 낮아진다. 출제위원의 고민은 다음과 같다.
"아니, 이걸 내면 애가 너무 점수가 높고, 저걸 내면 점수가 너무 낮아지잖아? 어쩌지?"


반면에, 수험생의 고민은 이렇다.

"공부를 많이 해야만 점수가 나온다"


즉, 출제위원은 점수가 너무 높아도 고민이고 너무 낮아도 고민인 것이다. 예를들어, 100점 만점인 시험에서 자신이 낸 문제를 푼 학생이 50점을 받아야 자신이 낸 문제가 "잘 출제된"문제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50점에서 멀어질수록 괴로워진다. 수험생은 100점에 가까울수록 좋고 멀어지면 괴롭다. 이것은 연속 변수와 관련된 딜레마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분석하기는 곤란하지만, 개념적인 이해를 해볼 수는 있다. 수험생이 0점 근처의 점수를 받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이다. 따라서, 이렇게 되는 일은 모두 막기 위해서 노력한다. 즉, 출제위원이 너무 어려운 문제를 내는 일도 없고 수험생이 너무 공부를 안하는 경우도 없다. 이 협동은 수험생의 점수가 50점을 넘어가는 순간 깨진다. 수험생은 여전히 점수가 높을수록 좋지만 출제위원은 이제 수험생이 점수가 높아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문제는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런다고 수험생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험생은 낮아지는 점수를 막기 위해서 더욱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과정이므로 수험생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문제는 어려워지고, 문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수험생은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결국 피터지는 수험 전쟁은 단 한명의 학생이 있어도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수험생은 한명이 아니라 집단으로 두고, 단 하나의 점수인 50점이 아니라 "표준정규화하지 않아도 표준정규화된 것 같아 보이는 성적분포"를 목표로 한다면 상황이 비슷해진다.


이것을 죄수의 딜레마 문제로 표현하기 위해서, 3명의 딜레마를 고려해 보자. 한명은 출제위원이고, 두명은 수험생이다. 다시한번, 앞서 출제위원-수험생1명의 딜레마와 같은 방법으로 분석해 보자. 두 학생의 평균 점수가 50점에 가까울수록 출제위원은 좋다. 두 수험생은 자신의 점수가 높을수록 좋다. 그다지 교육적이지는 못하지만, 수험생은 서로에게 공부를 하도록 할 수도 있고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자.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석하면 될까?
두 수험생의 점수가 둘 다 50점을 넘지 않는다면 출제위원은 수험생의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수험생들은 굳이 포기하지 않는 한 적당히 공부해서 50점까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어느 한쪽이 50점을 넘었다면 어떻게 될까? 출제위원은 평균점수가 50점근처에 있는 한 결코 난이도를 조절하지 않을 것이다. 잘 내고 있는데 뭐하러 괜히 수고스럽게 난이도를 바꾸겠는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두 수험생은 피말리는 경쟁을 하게 된다. 내가 쉽게 점수를 올리려면 난이도가 쉽게 나와야 하는데, 상대방이 나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수를 올리게 된다면 난이도는 어려워진다. 그럼 나 역시 피터지게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따라서, 나만 공부하고 저쪽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평균점수는 50점에 가까울 것이므로 난 손쉽게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공부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공부를 못하도록 방해해야한다. 이상한 결론이라고? 당연한 결론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 역시 바보가 아니므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은 내가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쉽더라도 상대방의 방해가 있기 때문에 내가 공부하는 것은 힘들어진다. 따라서 문제가 쉽건 어렵건 내가 공부하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방해를 안하기로 연합하는 것도 문제다. 그럼 성적이 서로 잘 올라가서 문제가 어려워지므로 공부는 힘들어진다. 반대로, 서로 공부를 안하기로 연합하는 것은 어떨까? 이 경우 최소한 50점까지는 성적이 떨어질 것이므로 각자 손해다. 이때 한쪽이 배신 때리면 다른 한쪽은 작살나는 거다. 따라서 이런 연합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적절한 난이도 수준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과의 경쟁이 심해지게 된다. 심지어 문제가 어렵지 않아도 대학가기는 힘들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만약, 출제위원이 괜히 문제를 어렵게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는 평균점수가 내려가게 될 것이므로, 서로가 방해하는 시간보다는 공부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물론 공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반대로, 출제위원이 괜히 문제를 쉽게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서로를 방해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공부하기는 상대방의 방해때문에 어렵다.

따라서, 문제가 쉽게 나오건 어렵게 나오건 대학가기는 힘들고 공부하기는 어려우며 매년 수능 난이도 조절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건 100만명의 수험생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균형을 이뤄서 모두가 잘 되는 길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공부를 똑같이 해서 잘 되기로 합의했다면 단 한명이 배신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에 모두가 배신하고 피터지게 공부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수능만을 분석했지만, 수능뿐만이 아니라 수험생들이 경쟁하는 모든 입시 시험에 같은 분석을 적용할 수 있다. 대학가기가 힘들고, 수험생들이 고생하는건 대학교 입시 제도가 자주 바뀌어서도 아니고, 논술 비중이 커져서도 아니며, 학생부 위주의 선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도 아니다. 대학에 가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 수험생들이 피터지게 고생하고, 점점 더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수험생들의 피터지는 경쟁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대학교"로 한정해 버린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이 분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대충 배워서 분석한 사견임을 밝힌다.
by snowall 2006. 9. 24. 01:37
꽤 독한 글을 읽었다. 나도 고등학교, 중학교때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었다. 지금도 그 관념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학교라는 집단은 어째서 획일화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대학 와서 일탈하다가 취업난에 시달리지. 물론 일탈 안하고도 취업난은 심각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독한 글이 심기를 거스를 것 같다면 읽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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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all 2006. 9. 20.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