泣けばいいの (울어도 괜찮아요)

노래 : 林原めぐみ

作詞:木本慶子 作曲:三留研介

「風の中は 雨の香りがする」 "바람 속에서 비의 향기가 나"
グレイの空 見上げながら 회색의 하늘, 올려다 보면서
くりかえして あなたはつぶやく 계속해서 당신은 중얼거리네

思い切り泣けないのは 생각을 접고 울지 않는것은
いつも通りの強がり 언제나 그렇듯 강한 척
大好きなカーディガン 정말 좋아하는 가디건
切ない肩にかけ 아쉬운 어깨 위에 걸치고
季節前の海を見てる 계절 전에 바다를 보고 있어

限りなく寄せて返す 끝없이 맡겨져 반복되는
哀しみはそこらじゅうに 슬픔은 그 언저리에
そのたびに逃げたり그때마다 도망가고
そのたびに傷つく그때마다 상처받고
平気なふりをしてみせる 평범한 척 꾸미고 있었어

黙りこんだら つらくなるだけ 가만히 있으면 괴로워질 뿐
誰も一人きりじゃ 生きて行けない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없어
そうでしょ?그렇죠?

泣けばいいの 今は泣けばいいの 울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울어도 괜찮아요
胸の奥の曇り空を みんな洗い流して 가슴 속의 흐린 하늘을 모두 씻어 내려면

泣けばいいの 今は泣けばいいの 울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울어도 괜찮아요
つらかったね 頑張ったね 떠오르겠죠, 버텨나겠죠
笑顔のために涙はあるから 웃기 위해서 눈물은 있는 거니까

霧雨が降り出したら 이슬비가 내린다면
海岸に降りていこう 바닷가에 내려온다면
あなた一人だけが 당신 혼자만이
さみしいわけじゃない 외로운건 아니에요
誰にでも私にもある 누구에게도 나도 그래요

溜息だけが上手になって 한숨만 늘어나니
暗い海の底で眠るばかりじゃ 어두운 바다 깊은곳에 잠들 뿐이라면
いやでしょ? 싫겠죠?

嬉しいこと 心痛めること 기쁜 일, 마음이 아픈 일
困るぐらいたくさんある 괴로울 정도로 많이 있어요
これからも出逢うけど 지금부터 만나겠지만

泣けばいいの そして笑えばいい 울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웃으면 돼요
泣いたあとの笑顔のこと 울고난 다음에 웃는 것을
忘れなければいいと思うよ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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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인상깊다. "울어도 괜찮아요"
울고싶을땐 울어야지...
by snowall 2010. 6. 4. 04:08
훈련기간 28일, 헐...

일단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일 것이고, 안 다녀온 사람들은 말해도 잘 모를테니 그 이외의 특이사항만 얘기해 보겠다.

1. 종교행사의 최근 경향
기독교는 싫어하니까 안갔고, 천주교, 원불교, 불교에 갔다. 미래의 훈련병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가이드를 작성해 둔다.
천주교 - 훈련소의 그분이 천주교 신자다. 따라서 군종 군기가 제일 세다. 미사 드릴때 떠들면 그자리에서 얼차려 받는다. 물론 먹을 것 주는건 가장 많이 준다. 3~4종, 또는 그 이상도 자주 나온다.
불교 - 저녁 법회때, 당신의 종교가 뭐든지 상관 없이 저녁 불교 법회는 반드시 1회 이상 가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보안상 말할 수는 없지만, 궁금한 사람은 전화나 기타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연락하면 왜 권장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나쁜거 아니니까 아무튼 가보길 권한다. 먹을 것은 그냥 보통 정도.
원불교 - 먹을거 가장 적게 준다. 그래서 가장 신자 숫자가 적다. -_-;
다만, 가끔 원불교 재단에 속한 W대학의 여대생들이 와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그 직전 주말에 원불교 행사에 참석한 신도들만 알 수 있다.

2. 군장 무게와 행군
10kg정도 군장을 메고 10km정도 걷는것이 주간행군, 20km정도 걷는 것이 야간행군이다. 현역들(5주 훈련 받는 인원들)은 25kg정도 군장을 메고 1박 3일 일정으로 30km야간행군을 한다는데, 그보다는 훨씬 쉬워야 하긴 하는데 전문연구요원들은 주간행군 끝내고 나서 거의 다 빈사상태에 빠졌었다. 25kg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싶으면, 당장 마트에 가서 20kg짜리 쌀 포대 하나를 사서 집에까지 들고 걸어와 보면 된다. 그보다 조금 더 무겁다.

3. 소감문 발표 경쟁
원래 소감문 발표는 연대 전체(1400여명)에서 1명도 안나올 정도로 귀찮은 일이다. -_-;
그래서 연대장은 교육대대 중에 하나 찍어서 발표를 시키고, 해당 대대장은 중대중에서 하나 찍어서 발표를 시킨다. 해당 중대장도 중대 훈련병중에서 아무나 하나 찍는데, 이번엔 중대장이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다. "저요"
난 글을 잘 쓰니까 ㅋ
근데 한명 더 손들었다. -_-
이런데서 갑자기 왜 경쟁자가...;;;
아무튼, 그 친구랑 볼펜으로 배틀을 붙었다. 소대원들 모아놓고 한 임시 발표회에서 평가는 10대 7로, 내가 졌다. 그리고 중대장님이 제비뽑기로 결정하자고 해서 추첨을 했는데, 내가 졌다. 그래서 공식 소감문 발표는 못했고, 그냥 훈련병의 밤 시간에 소박하게 200명 앞에서 발표했다. (공식 소감문은 연대 전체, 즉 1400명과 그 훈련병들의 부모님과 간부와 기간 장병 등, 대략 3000명 정도 앞에서 발표하는 자리다.)
아무튼, 그렇게 3000명 앞에서 발표한 그 친구도 잘 했다.

4. 육군훈련소장 표창장 수상
별 2개 계급인 분에게 우수 자치근로자라고 상 받았다. 아마 내가 좀 우수했나보다. -_-;
(소대원들이랑 분대장들이 제발 사회에 나오지 말고 군대에 말뚝 박으라고 하긴 하던데...)

5. 약속
훈련소 가기 전, 친구에게 짐승남이 되어 돌아오겠다 다짐하고 떠났었다
짐승이 되긴 했다.

돼지...-_-

살 안빠진다...젠장.

6. 그래서 소감은?
두번은 못가겠다.
그리고 훈련소 아직 안간 내 친구들도 있는데, 암담하다.
by snowall 2010. 6. 3. 22:45
훈련소에서 제가 공식적으로 작성한 소감문입니다. (중대원 전부 모아놓고 발표도 했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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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28일간의 훈련소 생활이 끝났습니다. 28일 전, 이곳에 들어오던 때의 제 모습을 돌이켜보면 많은 걱정과 불안, 글고 조금의 설레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사회와 단절된다는 것, 천안함 사태로 빚어진 긴장 국면 등, 걱정스러운 일이 쌓여 있었고, 사회에서 듣고 온 많은 군대 얘기와 아직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투른 제가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들이 저를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기대와 훈련이 끝난 후 제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 지 상상하는 것은 저를 설레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5월 6일 부모님의 눈물어린 전송을 받으며 입소하였습니다.

입소하자마자 정신없이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동화교육, 기본 제식부터 경계교육, 수류탄, 사격 등 정말 처음 경험하는 훈련과 일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에 저는 자치근무자에 지원하여 소대장 훈련병이 되었습니다. 소대장 훈련병이라는 임무는 결코 쉽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생각을 가진 소대원들을 단합시키고, 크고 작은 다툼을 조정하는 것들, 소대장 훈련병으로서 해야 하는 추가적인 임무 등, 모든 것이 힘든 일 투성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대장 훈련병으로서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 전우들의 따뜻한 전우애 덕분이었습니다. 저녁 점호가 끝나고 소대장 훈련병의 임무중의 하나인 상벌점 처리를 하고 나면 항상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상벌점 표를 분대장 님께 드리고 생활실로 돌아와 보니 제 자리에 매트리스와 모포가 깔려 있었습니다. 덕분에 여유있게 씻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전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소대장 훈련병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겪은 군대 생활은 4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그 사이에 군대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일들을 경험하였습니다. 훈련소에 오기 전, 군대라는 곳은 병사들만 고생하고 상급자는 편할 것이라 막연히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간 행군을 하던 중, 계급이 높아 보이는 지휘관과 병사 수 명이 빗자루로 길을 쓸고 있었습니다 이 때 지휘관 분께서 청소를 지시하고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빗자루를 들고 병사들보다 더 열심히 쓸고 계셨습니다. 또한, 배식조에 속해서 식당 청소를 할 때에도 분대장님들이 지시만 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치우고 설것이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들 속에서 저는 이것이 일부의 잘 하는 모습이 아니라 육군 훈련소 전체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훈련소에서, 이렇게 훌륭한 지휘관 밑에서 훈련받은 군인이라면, 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들이 우리 국군을 믿고 안심하여 사회 발전에 전념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훈련소에 들어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규칙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식사나 화장실 이용까지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는 군대의 규칙은 계속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군대에 엄격한 규칙과 제한사항이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되면서, 괴로움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찾아갔습니다. 아울러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최전방에 나서서 국방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저의 친구들, 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사회에서 맡은 임무를 더욱 열심히 수행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갈 인생에서, 제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야간행군에서 느꼈던 완전군장보다 무거울 것이며, 흘려야 할 눈물은 화생방보다 매울 것이며, 도전해야 할 경쟁은 각개전투훈련보다 치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훈련받으며 단련한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은 제가 겪게 될 전쟁에서 저를 살아남게 하고 끝내 성공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줄 것입니다.

이제 더 큰 세상 속에서 더 낳은 일들을 해내기 위하여 육군 훈련소를 나섭니다. 항상 저를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과, 힘들 때마다 도와준 전우들, 잘못에 대한 따끔한 질책과 친절하고 상세한 교육을 해주신 분대장님과 소대장님들,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잊지 않으시고 저희를 이끌어주신 중대장님과 대대장님께 큰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제가 이 훈련소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여기 계신 분들처럼 언젠가 제 아들을 보낼 때 다시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때,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제 아들에게 이 소감문을 다시한번 읽어주고 싶습니다. 이상으로 저의 소감문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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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소감문이다. 그래서 칭찬밖에 없다. -_-;


by snowall 2010. 6. 3. 22:28

공지사항

핸드폰은 사용 가능한데 문제가 발생함.

핸드폰의 충전 단자가 고장났음.

핸드폰 배터리 충전 케이스는 전부 광주에 있음.

임시 해결방법 - 동생이랑 같은 기종이므로, 동생이 집에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배터리 바꾸고 충전시킨다.
임시 해결방법 - 친구가 쓰던 전화기랑 같은 기종이므로 친구에게 충전 케이스를 빌린다.
해결방법 - 빨리 광주로 내려간다. (일요일날 내려갈 예정이라...)

그래서, 지금 전화 안됩니다. 6월 3일 22시 현재.
by snowall 2010. 6. 3. 22:04
소라넷이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매일 글을 써도 하루 400명 넘기가 힘들던 블로그가 소라넷 낚시글 하나 덕분에, 5월 한달 내내 글이 하나도 없었는데 매일 500명 이상, 1000명 이상도 자주 보이는 정도로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헐...
by snowall 2010. 6. 3.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