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게이지 이론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적어 보려고 한다. 게이지Gauge라는 단어는 뭔가 측정을 하는 도구를 말하는데, 물리학에서 말하는 게이지 이론(Gauge theory)란 전혀 다른 헛소리를 얘기한다. 완전 다르다. 심지어 뭘 측정하지도 않으며 숫자도 아니고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게이지 변환 Gauge Transformation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자기학을 처음에 시작할 때, 맥스웰은 4개의 방정식을 적어놓고서 그걸 "맥스웰 방정식"이라며 자기 이름을 붙여놨다. 아무튼 맥스웰 방정식은 수학적으로는 2종류의 벡터 장에 관한 4개의 미분 방정식을 제공한다. 물론 이 맥스웰 방정식을 일반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며 과학자들은 그냥 그때그때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자, 생각해 보자. 미분이라는 건 변화율을 계산하는 거니까 미분해서 0이 되는 것들은 모두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맥스웰 방정식은 모두 미분 방정식이기 때문에 미분하기 이전에 해당하는 것들에는 우리가 "변하지 않는", 즉 "미분하면 0이 되는" 것들을 더해도 상관이 없다. 즉, 맥스웰 방정식이 정확하다면 미분하기 이전의 값들에 우리가 어떤 "미분해서 0이 되는" 항들을 더하더라도 물리학의 실제 현상이 바뀌지 않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하며, 이해해주기 바라는 중요한 키 포인트다. 미분해서 0이 되는 것들은 우리 맘대로 더하거나 빼도 된다. 우리가 맘대로 해도 물리학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는 "대칭적이다"라고 말한다.
맥스웰 방정식은 우리 생활에 영향을 주는 전자기 장치들의 기본 법칙을 알려주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이 방정식을 열심히 풀었는데, 풀다보니 흥미로운 성질을 발견했다. 상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분하면 0이 되는 항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건 정말 신기한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바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맥스웰의 미분 방정식이 그냥 단순한 방정식이 아니라 3차원의 벡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벡터는 3개의 방향을 가진 성분으로 되어 있다. 맥스웰 방정식에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x성분을 y성분과 z성분으로 미분하는 항들이 몇개 들어 있는데, 자기장의 y성분을 x성분으로 미분한 것과 z성분을 x성분으로 미분한 것이 전기장의 x성분의 시간 변화율과 위치에너지의 변화율의 x성분의 합과 같다는 식이 있다. 그럼 자기장의 y성분을 x성분으로 미분한 것이 0이기만 하면 되니까 y성분을 y성분으로 미분한건 0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다, 뭐 이런것 등등이 가능해진 것이다.(단 2줄로 설명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여기서 우리가 상수가 아닌데도 미분해서 0이 되는 것들을 맘대로 더하거나 빼는 변환을 두고서 "게이지 변환"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물론 게이지는 우리가 맘대로 더하거나 빼는 바로 그것이 아니다.

맥스웰의 방정식을 말로 쓰면 다음과 같다.

1.전기장의 시간 변화율은 자기장의 꼬임 정도의 공간 변화율curl과 같다.
2.전기장의 꼬임 정도의 공간 변화율은 자기장의 시간 변화율과 같다.
3.전기장의 발산율divergence은 전하의 분포와 같다
4.자기장의 발산율divergence은 0이다.

한가지 물어보자. 전기장과 전기적 위치 에너지(전위, volt)는 어떤 관계일까? 전기장은 단위 양전하가 받는 힘의 크기를 나타내니까 적분하면 에너지가 되고 따라서 전위는 전기장의 적분이다. 전위는 그냥 숫자만 주어져 있기 때문에 스칼라 포텐셜(scalar potential)이라고 부른다. 벡터와 스칼라의 구분은 고2때 물리 시간에 배울 것이다. 반대로, 전기장은 전위의 미분이다. 그럼, 자기장은? 자기장은 뭔가의 미분이면 안돼?

자기장도 물론 뭔가의 미분일 수 있다. 당연히 미분이겠지 생각하는 사람들, 맞췄다. 당연히 미분이다. 자기장은 벡터를 미분해서 얻는다. 즉, 자기장은 벡터 포텐셜의 미분으로 나타낸다. 벡터를 미분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 발산divergence을 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꼬임curl을 구하는 것인데, 벡터 포텐셜을 미분해서 벡터인 자기장을 얻으려면 벡터 포텐셜의 꼬임을 구하면 될 것이다.

전기장과 자기장을 스칼라 포텐셜과 벡터 포텐셜을 이용해서 표현하게 되면 다음과 같다
전기장 = 스칼라 포텐셜의 발산 + 벡터 포텐셜의 시간 미분
자기장 = 벡터 포텐셜의 꼬임

이러면 뭐가 되냐고? 아주 간단하면서도 유명한 정리가 있는데, "어떤 스칼라 함수의 물매gradient의 꼬임은 0이다"라는 것이다. 이건 편미분만 배우면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더 다루지는 않겠다. 아무튼, 위에 적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그렇게 해서 맥스웰 방정식에 대입하면 딱 들어 맞는다.

예를들면

전기장의 꼬임 = 스칼라 포텐셜의 발산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시간 미분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시간 미분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꼬임의 시간 미분 = 자기장의 시간 미분

아주 간단하면서도 유명한 정리가 또 있는데, "어떤 스칼라 함수의 꼬임은 발산이 0이다"라는 것이다.
그럼, 이제 벡터 포텐셜에 어떤 스칼라 함수의 물매를 더해보자. 그럼?

자기장(바뀐거) = 벡터 포텐셜(바뀐거)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꼬임 + 스칼라 함수의 물매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꼬임 = 자기장

벡터 포텐셜을 바꿔서 넣었는데 자기장이 바뀌기 전과 바뀐 다음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전기장에는 스칼라 포텐셜을 벡터 포텐셜에 더했던 바로 그 스칼라 함수의 시간 미분을 빼주게 되면 마찬가지 결과를 얻게 된다.
바로, 여기서 벡터 포텐셜과 스칼라 포텐셜을 "적당한 스칼라 함수"에 의해서 더하게 되는 것이 "게이지 변환"이다. 중요한건, 정말로 우리 맘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령 스칼라 포텐셜을 미분해서 벡터 포텐셜이 나오도록 한 다음에, 벡터 포텐셜과 더하면 0이 되도록 정해도 물리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방금 증명했듯이) 이것은 물리학자들에게 강력한 도구를 주었는데, 바로 그것이 "게이지 장gauge field"이다.
전자기장을 게이지 변환에 의해서 변하는 부분과 변하지 않는 부분으로 나눈 후, 우리가 맘대로 게이지 변환을 결정해도 되기 때문에 가장 풀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놓고서 문제를 해결한 후, 변하는 부분은 모두 없애버리면(그래도 된다. 왜냐고? 게이지 변환이 보장해 주니까.) 문제는 해결된다.
전자기학에서 나오는 게이지 장이 가진 대칭성은 U(1)의 대칭성을 갖고 있다. U(1) 대칭성이라는 것은 2차원에서 크기가 변하지 않는 회전에 해당하는 대칭성이다. 2차원에서의 회전은 순서에 상관이 없기 때문에 U(1)대칭성은 가환 덧셈 군(abelian additive group)에 해당한다.
(예를들어, 시계방향으로 10도 돌리고 20도 돌린거랑, 20도 돌리고 10도 돌린거랑은 아무런 차이가 없이 30도이다)

문제는 양자역학이다. 전자기학을 양자화해서 만든 양자 전기 역학은 U(1)의 대칭성을 가진 게이지 장을 이용해서 아주 잘 기술할 수 있었다. 파인만이 자랑했듯이, 양자 전기 역학은 인간이 만든 이론중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정확한 이론이라고 말해도 된다. 문제는 여기서 약한 상호작용과 강한 상호작용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물리학자들이 처음에 약한 상호작용과 강한 상호작용을 발견했을 때, 뭐 대충 풀리겠지 하고서 대충 풀었을 땐 잘 맞았다. 아싸! 대충 풀어서 맞았으니까 이제 제대로 풀어야지 싶어서 이론적으로 방정식 잘 쓰고 풀려고 하는데, 무한대가 나오는 것이다. 이 무한대는 참 난감해서, 어떻게 다룰 방법이 없었다.
뭐, 별 수 없다. 무한대는 무한대로 나누거나, 무한대만큼 빼거나 해서 유한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리학 이론에서 문제를 풀었을 때 무한대가 나오면 그건 명백한 오답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답에 끼워맞추려면 유한한 값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유한하게 만들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바로 가환이 아닌 대칭성을 가진 게이지 장을 도입하는 것이다.

U(1)의 대칭성을 가지는 게이지 장은 이제와서 밝히는 것지만, 사실 빛이다. 가환이 아닌 대칭성은 SU(2)라는 대칭성이 있는데, 이건 3차원에서 크기가 변하지 않는 회전과 같다. SU(2) 대칭성을 가지는 군은 약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SU(2) 대칭군을 만들어내는 생성원(generator)는 3개가 있는데, 이 3개의 생성원은 물리적으로 3개의 입자인 W+, W-, Z 입자에 대응된다. (물론 이 세 입자는 "진짜로" 발견되었다. 수학적 대상이 물리적으로 눈에 보인, 뭐 그런 예라고나 할까)

SU(3) 대칭군은 8차원에서 크기가 변하지 않는 회전과 같고, 물론 생성원은 8개가 있다. 강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고 8개의 생성원은 8개의 글루온Gluon에 대응된다.

이 글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지적 능력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내가 보증한다. 이건 사실 나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으며 아직도 공부하고 있다. 물론 나 말고는 이해한 사람이 아주 많이 있다. (안그러면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물어보겠는가)

by snowall 2006. 8. 28. 17:13

사실은...

별다른 충격 고백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광고글이며, 나머지 하나는 행운의 편지 종류의 글이다.(굳이 따지자면 하나 더 있지만, 그건 거의 종교랑 같은 내용이므로 합쳐도 된다)

종교는, 특정 종교를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또한 그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 굳이 숨길 생각이 없으며, 그 종교를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과학적인 어떤 부분때문에 그쪽 계열의 학생이랑 대판 싸운적이 있다. (물론 논리로서...;;)
사실 난 진화론의 신봉자이며 진화론이야말로 모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궁극적인, 그리고 맞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런 사람들과 싸우다 보니 더 공부하게 되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걸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동시에 일종의 고정관념도 생기게 되었는데, 나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틀렸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생겨 버렸다. 요새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지만, 사실 과학 이론이라는게 그냥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철저한 검증과 치밀한 논리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욕을 들어 처 먹어가면서 검증되기 때문에 잘 정립된 이론은 꽤 믿을만한 것이다. 그리고 그걸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한 욕도 먹어야 하고 훨씬 더한 검증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이 훨신 약하다. 그들은 "우린 당연히 맞거든"이 주 논리이고 "그건 말도 안돼"가 부 논리이다. 그럼 좀 과학적인 근거를 대 보든가. 이렇게도 말이 되고 저렇게도 말이 되는, 그래서 진화론에서도 설명은 하지만 직접적인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근거로 대고 주장하는 것은 참 어리석다. 최소한, 진화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직접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아무튼 종교 덕분에,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그" 종교인들 덕분에 난 세상에 더욱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객관적인 시각을 조금 더 갖게 된 듯 하다.


광고는, 사실 나는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누군가 나를 조작한다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광고는, 종류를 불문하고 나에게 뭔가를 강요한다. 나에게는 종교를 바꾸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광고이며, 그래서 난 종교가 없다. 물론 나라고 해서 광고를 봤을 때 낚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습의 결과, 낚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즉, 나는 나의 감정 상태를 느끼면서 동시에 외부에서 지켜볼 수 있다. 이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장점은 감정 조절이 굉장히 쉬워서 욱하는 김에 칠 수도 있는 사고를 대부분 방지하는 것이 있다. 단점은 연애에서도 이 사고방식이 발휘되어서 불쌍한 인생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난 내가 연애감정에 빠지는걸 느끼면서, 동시에 그걸 느끼고 있다는걸 자각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성공해 보지 못한 연애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 때문에 내 마음이 그쪽으로 확 불타오르는걸 자제해 버린다. 낚이지 않는건 좋은데, 연애마저 그렇게 되면, 사실 솔로인 사람들 대부분이 느끼고 있겠지만 안하다보면 계속 안하게 된다. 위험한것 같다.


행운의 편지류의, "이 편지를 똑같이 복사해서 7일 내에 7명에게 보내면 당신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는 내용의, 어쩌면 우체국에서 수익 증대를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이 초대형 낚시밥에 수많은 사람들이 걸려서, 그냥 걸리기만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에게 수십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던 적이 있다.
그 변형된 종류로서, "이 글을 다른 게시판에 올리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내가 안해봤을것 같나? 엄청 해봤다. 한 10번쯤 하고나서, 그녀로부터 당연히 전화가 안온다. 내가 걸어도 안 받는 전화를 그녀가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없다.
"이 글을 다른 게시판에 올리지 않으면 새벽 3시에 귀신이 찾아온다" 이런 협박, 난 3시까지도 기다려 봤고 밤새 기다려도 봤다. 당연히 올 이유가 없다.
"8억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건 미국에서도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8억 메일. 닥치시오 -_-;
8억메일의 허구성은 이미 내가 다른 글에서 증명한 적이 있다.(지금 그 글을 찾는건 좀 힘들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련의 수행을 통해서, 난 저절로 비판적인 사고가 늘어났고, 무슨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왜?" "정말?" "그래서?" 등의 대답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과학 하는데는 참 좋긴 한데, 일상에서도 그러면 인생에 많은 걸림돌에 굳이 걸리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참 걱정되긴 한다.

아,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 더 있다는 건, "무한 동력 기관"을 만들겠다는 헛소리를 하는 아저씨를 상대했다는 얘기였다. 그 아저씨, 제발 무한 동력 기관을 만들어서 돈좀 벌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거 실제로 만들면 특허권도 보호 못받고 곧장 국가 기밀로 몰수될 것이다. (물론 절대 그럴일이 없다)
 
by snowall 2006. 8. 27. 23:45
키보드를 샀다. 가격은 5만 5천원. 비싼가?

키보드의 특징은
ESC가 한칸 아래로 내려와서 물결 표시 있는데로 가 있고, 물결 표시는 다시 백 스페이스 있는데로 가 있고, 백 스페이스는 한칸 내려와서 백 슬래시 있는데로 가 있으며, 백 슬래시는 물결표시 옆으로 가 있다. 그리고 컨트롤 키가 캡스 락 자리에 가 있다. 나머지는 화살표 키와 편집키, 옆에 따로 모아져 있는 숫자 키 등이 잘라져 있다는 것 정도.

처음엔 엄청 불편하다. 일단 백 스페이스 위치가 표준과 다르기 때문에 오타가 날 때마다 "더 많은" 오타가 나는 시스템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눅스와 윈도우를 두대 다 쓰고 있기 때문에 컨트롤 키가 두칸이나 위로 올라와 있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리눅스의 수많은 단축키들은 컨트롤 키를 이용해서 쓰도록 되어 있고 더군다나 기본적으로 한/영 변환이 컨트롤+스페이스 조합이기 때문에 확실히 편해진다. 그리고 vi를 쓰다보면 esc를 습관적으로 자주 누르게 되는데 이것도 한칸 아래로 내려와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다. 게다가 보면 볼수록 느껴지는 심플함은 사실 나를 타이핑하고 싶어 미치게 한다.

물론 단점이 있다. 일단 내가 쓰던 HP키보드랑 비교할 때 굉장히 뻑뻑한 수준이다. 물론 힘껏 눌러야 들어갈 정도로 뻑뻑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 손가락이 살짝 눌러도 들어가는 키보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옆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선배들은 조용해 졌기 때문에 별로 신경 안쓴다.

사실 이 키보드를 처음 샀을 때 선배들의 반응은 "변태녀석!"이었다. 뭐, 좀 이상하긴 하지. 하지만 이 키보드는 옆이 없기 때문에 마우스로 손이 자주 가는 작업을 할 때도 좀 더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배열에 익숙해지면 다른 키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엄청난 단점이 있어서 사실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키보드다.

아무튼 질렀고, 잘 써야겠다.
by snowall 2006. 8. 27. 22:09
세상을 살아가는데 경쟁과 투쟁과 싸움은 항상 있는 일이다.

얼마 전에 겪은 일이다. 난 학교 옆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주인집 할머니가 수도 요금이 나왔다고 해서 돈을 내러 갔다.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과는 달리 수도요금은 주인집에만 계량기가 달려있고 각 자취방에서 쓰는 물값이 전부 일괄적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누가 얼마나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사람 수 대로 n등분해서 내게 되고, 이 방법이 대체로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지난달까지는 내가 친구랑 같이 살았고 이번달부터는 혼자 산다는 점이다. 지난달 요금은 2인분을 내는게 맞고 이번달부터 1인분을 내는게 맞긴 한데, 주인집 할머니는 우리집을 1인분으로 쳐서 n등분을 했다(약 8천원). 그러더니 2인분을 내라면서 8천원을 더 받아갔다. 나야 수학도 전공했으니 n분의 2가 아니라 n+1분의 2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지만, 귀찮아서 일단 냈다. 물론 앞으로도 그거 갖고 따질 생각은 없다.

자, 그럼 이제 내가 얼마나 더 냈는지 따져보도록 하자.
우리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몇명인지 모르므로 그냥 n명이라고 가정하자. 난 n등분된 돈을 2인분을 냈으니 n분의 2를 낸 것이고, 원래는 n+1분의 2를 내야 한다. 즉, 난 원래 낼 돈의 n분의 n+1을 더 낸 것이다. 약분하면 1과 n분의 1이다. 즉, 내가 낸 돈을 a원이라고 한다면, 내가 낸 돈 a원은 원래 낼 돈을 n등분한 것 중의 하나 만큼 더 낸 셈이 된다. 따라서 내가 원래 내야 할 돈은 a원의 n+1분의 n이다.

아무튼 이런 수도요금 체계를 가진 상황에서 각 자취방 사람들의 생각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건 자취방이 2명있고, 수도요금을 딱 절반씩 나눠내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도 일반성을 잃지 않는다.

예를들어 수도요금이 10000원이 나왔다면 나는 5000원을 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저쪽이 실제로 5천원어치 이상을 썼는데 저쪽은 5천원만 내고 내가 나머지 부분을 낸다면, 이건 억울한 일 아닌가? 확실히 억울하지? 그럼 내가 억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정답 : 저쪽보다 많이 쓰면 된다.

문제는 이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쪽이라고 해서 머리가 딱히 나쁠 이유도 없고,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경쟁이 시작된다. 서로 상대방보다 더 많이 써야만 내가 사용한 요금을 상대방이 내 주는 폭이 커지기 때문에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수도 요금은 한도없이 많이 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서로가 이것을 미리 생각하고, 서로 협력해서 어느정도 이상을 쓰지 않기로 자제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까? 한달에 한번도 마주치기 힘든 옆집 사람을 믿는다는건 현대 사회에서 굉장히 드문 일이다. (물론 이런 현실이 안타깝긴 하다.)

이 상황은 곧장 죄수의 딜레마로 연결된다. 서로 협력하면 둘 다 같은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배신하면 배신을 한 쪽은 큰 이익을 얻고 배신 당한쪽은 손해를 본다. 그리고 둘 다 배신하면 둘 다 손해를 본다. 선택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둘 다 배신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죄수의 딜레마의 변형된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죄수의 딜레마"라는 책을 참고하여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물론 내 맘대로 각색하였다.

둘이서 수도요금을 나눠 내는데, 더 많이 쓴 사람이 전액을 부담한다면? 이 경우는 서로 수도를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는 아무도 물을 사용하지 않는 건조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반대로 더 적게 쓴 사람이 전액을 부담하는 경우는 내가 처음에 얘기했던 예의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앞서와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규칙을 바꿔보자. 둘이서 수도 요금을 내야 하는데, 두 사람은 서로 별로 친하지도 않으며 서로 의견 교환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데 고지서가 두 자취방의 공통 대문 앞에 꽂혀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마감일까지 요금 전액을 낸다면 연체료는 없다. 하지만 아무도 내지 않으면 다음달에 연체료가 가산되어 청구될 뿐만 아니라 계속 안내면 수도가 끊긴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을 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딜레마는 "겁장이의 딜레마"의 변형인데, 가장 좋은 것은 둘 다 "동시에" 대문 앞에서 만나서 반반씩 내는 것이다. 그 다음은 어느 한쪽이 확 내버리는 거고, 가장 나쁜경우는 둘 다 안내는 것이다.

다른 경우도 있다.
수도요금 중에서 자신이 몇%를 낼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서로 얼마나 썼는지는 모르고 요금의 총액만 알고 있다. 즉, 1호실 사람과 2호실 사람이 있으면, 1호실 사람이 "난 10%를 낼 수 있어"라고 선언하고 2호실 사람이 "난 14%를 낼 수 있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선언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 각자 10%와 14%를 일단 낸다. 남은 돈에 대해서 다시 이 일을 반복해서, 낸 돈의 합이 수도요금 총액이 되면 그만 둔다. 이런 경우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까? 아마 50%씩 내는게 최종 결과일것 같긴 한데, 난 게임 이론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정답을 아는 분께 댓글좀 부탁드린다. 이건 "달러 경매"의 변형된 버전이다.

아무튼, 죄수의 딜레마의 여러가지 변형된 형태들은 실생활에서 이런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수도 요금은 서로 사용한 만큼 내는게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by snowall 2006. 8. 27. 14:22
사람들은 행복을 찾는다.
행복하면 좋은가?
남들이 다들 찾는다고 해서 유행처럼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남들이 가진 행복이 부러워서 나도 행복하고 싶어지는 건 아닐까?
각자가 갖고 있는 행복함의 기준은 다를 것이다. 언제 행복할까?
난 사실 행복하지만 불행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거나, 불행한데도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건 아닐까?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행하다는 증거는 아닐까?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왜 행복해야 하는가?

사실, 남에게 행복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 고민해 봐야 한다. 내가 남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행복하라는 말이 그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 사람이 "내 기준"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강요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행복이 절대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남들도 자신의 행복을 따라서 행복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두에게 개성이 있듯이 각자가 원하는 행복도 모두 다를 것이다.

남들이나 또는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라기 이전에,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 왜 행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런 고민이 없다면, 행복하다가 행복을 잃어버렸을 때 너무나 큰 절망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럼 불행한건가?
사실 행복해지는 일은 대단히 쉽다. 행복함의 기준을 바꿔서 현재의 자신의 상황이 행복한 상태가 되도록 조정하면 된다. 인생 뭐 있겠는가.

당신이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는 한 당신은 불행하다.

찾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불행해지라는 뜻도 아니다. 현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덜 행복하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찾아 지금 상황에서 떠난다면 그것이 또한 불행해 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찾아 떠나라. 그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떠날 것이다. 중요한건 "모른다"는 부분에 관한 정확한 이해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 말해주는 것은 그 원하는 것이 멀리 있을 가능성도 있고 가까이 있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미 여기에 있을 가능성조차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뭐, 멀리 있는 걸 찾기 위해 멀리 떠나서 결국 찾았다면 좋겠지만 여기에 있는 걸 모르고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발견한다면 찾긴 찾았어도 아쉽지 않을까?



그러므로, 떠날 때는 신중하게 떠나야 할 일이다.



by snowall 2006. 8. 26. 22:04